[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⑤] 씽크리에이티브 & 버거베어 임대성 대표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⑤] 씽크리에이티브 & 버거베어 임대성 대표
  • 임준 기자
  • 승인 2020.06.29 0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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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놀고 성공하는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
씽크리에이티브 & 버거베어 임대성 대표

[미디어리퍼블릭] 임준 기자=2020년,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을 꿈꾼다. 다소 거창한 계획은 희망도 주지만 기대가 커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몸이 굳어지고, 계획은 틀어진다.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노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한다. 2020년, 정말 잘 노는 사람들을 취재한다. 이번 주는 마케팅 전문 회사 씽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면서 버거베어라는 수제 버거로 외식업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임대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성악가의 삶을 꿈꾸다
  
임대성 대표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평범하게 자란 임 대표. 그가 전남 명문고에 전체 4등으로 입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모든 일에 열심이고 상황에 이해가 빨랐던 그가 주목받은 시기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글을 잘 썼다고 한다. 수많은 백일장과 글짓기 대회는 물론이고 대학 주관 백일장을 휩쓸었는데, 그는 특별히 시와 수필 부문에서 예술적인 두각을 보였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돌연 다른 모습을 보였다.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팝송을 즐겨듣던 그 당시, 존 덴버의 앨범을 듣다가 우연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부른 ‘perhaps love’를 듣게 되었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드라마틱한 음색에 빠져 성악을 배우고 싶었고, 당시 음악 관련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주변 교수님들을 연결해 주셨고, 많은 서포터를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계속 공부를 하기를 바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1교시만 끝나면 피아노와 성악 레슨을 위해 2년간 입시 준비를 하였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제게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플라시도 도밍고를 꿈꾸던 임대성 대표.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잘 될 줄 알았다. 재능과 노력이 겸비되면 세상은 행복한 결과를 준다고 임 대표는 믿었다. 하지만 그가 군 입대를 하고 생활하던 중,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예술은 어느 정도의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군 전역 후 부모님은 음악을 계속 하기를 원하셨지만, 음대에 다니며, 유학을 간다는 것은 임 대표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버거베어 매장 (사진=임준 기자)

“음악을 계속한다는 무모함보다는 가족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제 자신의 이익보다는 한솥밥을 먹는 회사 식구들과 같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래서 과감하게 음악을 접었어요. 아나운서로 진로를 바꾸었죠. 1년간 다시 수능 공부를 하여 신문방송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참 사람의 인생이 알 수 없다고 생각했죠. 언론고시보다 크리에이티브를 잘 발현할 수 있고, 저의 적성에 맞는 것이 광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 대표는 전공 교수들과 함께 일본의 포플러 출판사와 동경 디자인 스쿨을 견학가게 된다. 그 곳에서 임 대표는 아동 출판물의 화려한 팝업북, 조작북 등을 보며 출판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된다.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출판사에서 길을 찾다
   
그리고 임 대표는 선진 국가의 아동 도서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아동 서점을 3개월간 뒤졌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한국의 새로운 아동 출판물을 준비하며 출판사에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출판 시장에서 임 대표의 선진적이고 파격적인 기획들이 순순히 단번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학에서 전공한 광고 기획의 능력을 인정받아 출판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서점 앞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영국의 유명한 서점 앞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프랑스 파리의 동네 서점 (사진=임대성 대표)
프랑스 파리의 동네 서점 (사진=임대성 대표)

“당시 다니던 출판사의 주력 상품이 영어 도서였어요. 다들 어떻게 이 책들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나서서 홍보와 마케팅 플랜을 세웠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절대로 생각만 가지고 일이 잘 되지는 않아요. 발로 뛰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어야 이뤄낼 수 있는 일들이죠. 그렇게 노력한 끝에 당시 300만부라는 기록적인 판매를 이루어냈고, 회사 내 마케팅 팀장으로 초고속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임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어 온라인 교육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약 12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고 한다. 또한 엄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5만 명의 회원을 모으는 기염을 토한다. 임 대표는 이러한 회원 기반의 엄마표 교구를 제작하여 쇼핑몰에서 대박이 나는 성과를 이루어낸다. 이러한 성공은 뒤에 임 대표의 사업의 큰 바탕이 되고, 새로운 미개척지에 대한 용기와 뚝심을 임 대표에게 만들어 주었다.

출판사 근무 시절 사진 (사진=임대성 대표)
출판사 근무 시절 사진 (사진=임대성 대표)
출판사 시절 개발한 교구 (사진=임대성 대표)
출판사 시절 개발한 교구 (사진=임대성 대표)
출판사 시절 서포터즈 교육 (사진=임대성 대표)
출판사 시절 서포터즈 교육 (사진=임대성 대표)

“공구를 하면 5분 만에 매진되었어요.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이 생겼어요. 교구를 사는 엄마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제 자신이 미혼의 남자였다는 거였죠. 엄마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우선순위나 가치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싶었어요. 젊은 시절,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향점을 공감하여, 맥락이 있고, 지속적인 사업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일이 잘 될수록 사업의 기본을 생각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생각은 제가 지금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눈에 보이는 수익보다 미래와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 항상 저를 깨우게 합니다.”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 대표는 회사를 나와 사무실을 차린다. 후배 한 명을 직원으로 둔 임 대표의 첫 회사였다. 임 대표는 처음부터 대박을 터트리기 보다는 좋은 상품이지만 마케팅과 홍보에 실패하여 고전하는 제품들을 일부러 찾았다. 그 제품들을 다시 리마케팅하고 인큐베이팅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임 대표의 생각은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그의 좋은 취지만큼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3개월에 걸친 임 대표의 실험은 의외의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

 “우연히 여원미디어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회장님도 제가 마케팅 해서 대박이 난 영어 제품의 사례를 잘 알고 계셨죠. 좋은 제품이 있으면 제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원미디어는 세계 45개 이상의 국가에 동화책을 수출하며, 퀄리티 높은 동화책을 만드는 국내 어린이 도서 1위 출판사였고, 한국의 전래동화를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출판계에서는 알아주는 큰 출판사였습니다. 정말 정성스럽게 사업 제안을 준비해서 회장님을 찾아갔는데, 다섯 번이나 거절을 하시더군요. 여섯 번째 회장님께 오케이를 받았습니다.”  

여원미디어 김동휘 회장님과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여원미디어 김동휘 회장님과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여원미디어와 함께 한 제품 홍보는 성공적이었다. 임 대표는 승승장구하며 많은 클라이언트를 확보하게 되었다. 임 대표의 홍보 마케팅 범위는 출판물을 넘어 식음료, 제약회사 등의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해 가며 성공적인 광고 회사로 성장해 갔다. 새로운 제품의 홍보가 많아지게 되었지만, 임 대표는 자만하지 않고 한 제품, 한 제품에 최선을 다했다. 서두르지 않고 제품을 파악하고, 타켓 니즈를 연구하고, 광고 전략에 밤을 새웠다.  

“사업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사업이 잘 되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업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내세운 홍보 및 광고 전략에 대해 다른 제안을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단순한 제품 홍보나 광고가 아닌, 문화축제나 기업 행사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시작으로 수많은 지자체, 기업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행사 사회 및 진행을 하기도 하고, 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교육 사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박람회에서 시연 중인 임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박람회에서 시연 중인 임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서울대지주회사 평창약초_서울대에서 사업 발표 중인 임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서울대지주회사 평창약초_서울대에서 사업 발표 중인 임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풀무원 영업사원 집체교육 중인 임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풀무원 영업사원 집체교육 중인 임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홈워터캠페인 주부 300인 서포터즈 행사 사회 (사진=임대성 대표)
홈워터캠페인 주부 300인 서포터즈 행사 사회 (사진=임대성 대표)

임대성, 새로운 사업의 길을 찾아 나서다

임 대표는 무던한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워커홀릭이라고 말하지만 그만큼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해온 사업에서 얻은 교훈과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임 대표는 무모한 탐험가적인 사업가가 아니라, 이미 알고 조사하고 준비한 곳으로 가기를 선택하고 그 길에서 스스로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던지는 스타일의 사업가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여러 가지 성공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좀 더 다른 영역에 대한 사업적 갈증이 있었어요. 마흔이 되기 전에 다른 사업을 펼치고 싶었죠.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의 색깔이 베어든 사업 형태를 만들기 위해 초반에 준비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광고를 전공하고,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이 있지만,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요식업, 패션브랜드, 생활용품 브랜드, 인테리어 리빙 브랜드가 제일 하고 싶은 신규 사업 영역입니다.”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 대표는 그 중에서 소비자의 피드백이 가장 빠른 요식업을 일순위로 선택했다. 오랜 준비 끝에 그는 버거베어라는 수제버거 브랜드를 런칭한다. 호텔 셰프를 영입하여 새로운 레시피와 메뉴를 만들었다. 수제버거의 변별력을 위해 보다 좋은 재료의 공급망을 뚫었다. 수많은 수제버거와의 경쟁을 위해 수익을 줄이고, 단가를 낮췄다. 그리고 다소 힘들더라도 잠원동이라는 강남 요지에 오프라인 매장을 설립하였다. 

가수 남진 씨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가수 남진 씨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곽경택 감독과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곽경택 감독과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래퍼 지방지호시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래퍼 지호지방시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슈퍼모델 정유나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슈퍼모델 정유나와 함께 (사진=임대성 대표)
버거베어 유튜브 촬영 장면 (사진=임대성 대표)
버거베어 유튜브 촬영 장면 (사진=임대성 대표)
버거베어 유튜브 촬영 장면 (사진=임대성 대표)
버거베어 유튜브 촬영 장면 (사진=임대성 대표)

“프랜차이즈 사업은 아시겠지만 경쟁이 대단합니다. 저 같이 이쪽 사업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들이 정말 많죠. 매장 선정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1개월 반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제버거는 레시피에서 승부를 걸어야하죠. 호텔 쉐프로 있던 친동생을 설득해서 주방으로 데려왔죠. 그 인프라를 바탕으로 모든 R&D 인력을 롯데호텔, 반얀트리호텔, 르네상스호텔 등 호텔 쉐프로 구성하였습니다. 이 잠원동 매장을 테스트 매장으로 오픈했죠. 셀레티라는 이태리 리빙 브랜드와 콜라보로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기존의 수제버거보다 매장이나 맛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레트로버거라는 슬로건으로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준비했죠.”

매장이 오픈하는 날,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임 대표는 매장 오픈을 위해 특별하게 홍보나 마케팅을 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공사 중에 내 걸었던 ‘호텔 쉐프들이 재해석한 레트로 버거’라는 슬로건이 이슈였다고 분석했다.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았고, 웨이팅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수제버거가 되었다. 가맹 및 입점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진행하고 싶었다. 계속 내방객들의 반응을 리서치해서 맛과 메뉴를 점검하였다.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시작이 중요하죠. 저희가 완벽하게 준비하여야만 후에 가맹점들이 시행착오를 하지 않죠. 저는 버거에 어떤 트릭도 안할 생각입니다. 자극적인 조미료나 이런 것을 전혀 넣지 않을 거예요. 일단 부산과 대전에 지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올 초 코로나 때문에 미룬 신림과 성수 직영점도 하반기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시장 상황을 보면, 이제 한국에도 수제버거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아지고, 기업에서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요. 외국의 유명 수제버거 브랜드로 들어온다 합니다. 한 마디로 수제버거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임 대표가 선보인 신 메뉴는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건강해지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기존의 제품과 차별화 되면서도 가성비를 낮추는 일은 기업의 모든 노하우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 임 대표가 관여하고 있다. 씽크리에이티브 대표이기도 한 임 대표는 버거베어의 지사 및 직영점, 가맹점의 홍보 및 마케팅에 관여할 예정이다. 

루꼴라 모짜 트러플 버거 (사진=임준 기자)
루꼴라 모짜 트러플 버거 (사진=임준 기자)
칠리 모짜 버거 (사진=임준 기자)
칠리 모짜 버거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임대성 대표 (사진=임준 기자)

“수익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같이 공생하는 프랜차이즈가 제 목적이에요. 그래서 홍보나 마케팅에 있어서 저희 씽크리에이티브의 모든 인력과 회사 자원이 함께 할 거예요. 그동안 제약회사, 건강식품, 생활용품의 홍보 및 마케팅을 하면서, 소비자와 어떻게 소통하고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체험단 운영은 저희 회사가 자랑하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저희 회사는 8년 동안 영업사업이 없었습니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계속 가는 게 저희 회사 스타일입니다. 8년 전에 실무자로 만나서 지금은 회사 대표나 결정권자가 되어 있기도 하고, 서로 소개하면서 커지게 된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씽크리에이티브 사무실 전경_셀레티 소품 (사진=임대성 대표)
씽크리에이티브 사무실 전경_셀레티 소품 (사진=임대성 대표)

 

씽크리에이티브 회의실 전경 (사진=임대성 대표)
씽크리에이티브 회의실 전경 (사진=임대성 대표)

임대성, 행복한 삶, 풍요로운 인생을 기획하다

사업은 절대로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통계와 확신이 드는 수많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그 위에 홍보나 광고는 더 정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임대성 대표는 어느새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버거베어를 런칭하고 자사 브랜드를 소유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사업이 많고, 준비도 많이 하고 있다. 

“요새 광고 사업에 대한 생각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해왔는데,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하기도 하고, 경쟁이 너무 치열하죠. SNS나 동영상 환경으로 재편되면서 대기업도 뛰어들고 해서, 과거처럼 큰 효과를 내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존의 체험단을 중심으로 인플루언서 쪽을 주력으로 하고, 동영상 플랫폼을 만들면서 시대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사 브랜드를 계속 만드는 이유도 중요한 생존 전략인거 같아요. 내부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박준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사진=임준 기자)

대기업이 아닌 중소 규모의 회사들은 인력풀이 좋지 않다. 그리고 대표가 직접 모든 것을 점검하지 않으면 운영은 물론 모든 부문에서 균열이 오기 쉽다. 임대성 대표 역시 사업이 계속 확장되면서 본인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믿음직스러운 직원들에게 맡기고 같이 공유하는 부분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임 대표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업 초기부터 임 대표와 함께한 회사 식구들이 항상 믿음직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광고와 제품, 프랜차이즈, 다양한 사업 확장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행복하기는 한데. 개인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잠도 못자고, 사업에 대한 강박, 클라이언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나 봐요. 어느 순간 번 아웃이 되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사업도 좋고 다 해야 할 일들이지만 제가 행복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떠오른 것이 성악이었어요. 정말 성악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20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았거든요.”

성악 레슨중인 임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성악 레슨중인 임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런던 오페라하우스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런던 오페라하우스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임 대표의 사업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도 잘 되고 있고, 확장 일로에 있지만, 정작 힘든 것은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 난 후의 임 대표 자신의 마음이었다. 직영점, 가맹점의 사업 본격화 전에 먼저 임 대표 스스로를 추슬러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임 대표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20년 전에 가슴에 묻었던 성악을 다시 하기로 임 대표는 결심한다. 그리고 임 대표는 성악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오랜 동안 쉬었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레슨을 받으면서 행복해 지기 시작했어요. 저녁에 일을 마치고 들어와 오페라 아리아 음악을 듣고, 아침에 일어나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하는 제 자신이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되게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신 테너 송구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음악이 저의 잠재된 용기를 일깨우고, 노래가 저를 현장에 나가서 지치지 않은 활동가로 만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정말 원하는 분들을 위한 상설 무대를 만드는 것도 저의 몫이자 행복이겠죠.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유럽을 돌며 성악 버스킹을 통해 언어가 아닌 음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음악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 

임대성 대표는 1년 뒤에 성악 콩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늘어나는 신규 사업을 감당하면서 준비하는 것이기에 더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10년 뒤에는 오프라인 성악 카페를 만들 예정이다. 전문 성악가도 좋지만, 오랫동안 노래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분들도 좋고, 이제 성악을 시작하려는 분들도 대환영이다. 같이 모여서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임 대표는 생각한다. 그곳에서 매일 공연하며 사는 게 꿈이 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성당 안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유럽의 성당 안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프랑스 보르도 와인 농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사진=임대성 대표)
프랑스 보르도 와인 농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사진=임대성 대표)

“40, 50대 대상으로 하는 패션 사업도 해보고 싶어요. 패션 중심에서 좀 벗어났다고 할까요? 그런 분들과 함께 즐기고 같이 할 수 있는 패션 문화를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제 삶에서 생각한 사업아이템이고, 저 또한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잖아요. 당장은 다 하기 어렵겠지만,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말씀드린 대로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와 함께 한 사람들, 저를 도와주고, 제가 도와야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사업 형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임대성 대표의 사업 구상은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같이 하고 깨닫고 정리한 원칙을 바탕으로 만들어 나간다. 사업을 했다기 보다는 같이 뭔가를 소통하고 만들어 온 시간이었음을 임 대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오랜 시간 속에서 믿어주고, 같이 했고, 성공해서 더 큰 힘이 되어준 주변 분들에게 더 큰 믿음으로 다가갈 수 있어서 임 대표는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꿈이었던 성악을 다시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소중하다. 무엇보다 그 여유를 현실화한 임대성 대표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10년 뒤, 유럽 어느 한 소박한 동네에서 성악 버스킹을 하고 있는 임대성 대표를 만날 수 있을까? 

임대성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임대성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임대성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임대성 대표 (사진=임대성 대표)
직원들과 야유회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직원들과 야유회에서 (사진=임대성 대표)
소중한 인연, 김형래 부사장과 함께 (사진=임준 기자)
소중한 인연, 김형래 부사장과 함께 (사진=임준 기자)
소중한 인연, 김형래 부사장과 함께 (사진=임준 기자)
소중한 인연, 김형래 부사장과 함께 (사진=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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