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한국은 왜 스크린 스포츠의 성지가 됐나?
[집중분석] 한국은 왜 스크린 스포츠의 성지가 됐나?
  • 박시홍 기자
  • 승인 2019.07.07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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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골프, 스크린야구 열풍에 이어 스크린낚시, 스크린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스크린스포츠 전체 시장도 이미 5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스포츠강국 일본에도 스크린골프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스크린스포츠의 인기가 높은 것일까?

 

∎스크린스포츠 전체 시장 5조 규모로 성장

한국에서 스크린스포츠를 이끈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골프였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국내 스크린골프시장 해부 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린골프 시장은 지난 2015년에 이미 약 1조 200억 원 규모에 달했다. 스크린골프 매장 수는 7500개에 달해 포화 상태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스크린골프 인구는 지난해 351만 명으로 필드 골프 인구를 추월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버블 경제 때 골프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골프 인구가 줄어드는 바람에 폐업한 곳이 즐비한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골프 인구가 크게 줄지 않았다. 골프 인구 감소를 막은 일등공신이 바로 스크린골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크린골프장에서 실력을 닦은 아마추어들이 대거 실제 필드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골프 인구가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크린골프의 영향을 받아 스크린야구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4년에 처음 등장한 스크린야구는 5년 만에 매장 수가 450여개를 넘어섰으며, 시장도 연간 50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20년에는 1조원 규모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낚시, 양궁, 승마, 컬링, 볼링, 테니스, 배드민턴, 사격 등도 스크린스포츠 시장에 속속 가세하고 있다. 선도하고 있는 스크린골프와 나머지 스크린스포츠 시장을 합하면 전체 시장은 지난해 이미 5조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크린골프업체 '골프존'은 지난달 열린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에서 시뮬레이터 시스템을 선보였다. (사진=골프존)
지난달 19일 열린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에서 시뮬레이터 시스템을 선보인 국내 스크린골프업체 '골프존'. 스크린스포츠의 선구자 격인 스크린골프는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사진=골프존)

 

∎일본 기업도 한국 스크린스포츠 시장에 ‘눈독’

일본 세이코 엡슨의 한국법인 한국 엡슨은 올 초 서울 강남에서 2018년 사업전략발표회를 열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과 ‘산업용 로봇’ ‘비즈니스 프린트’의 3분야를 축으로 BtoB (기업 간 거래) 사업을 확대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특히 프로젝터 사업에 힘을 쏟는다. 프로젝터는 고정밀 화질을 얻을 수 있는 높은 고광량(高光量) 제품을 투입하여 시장점유율 톱을 노린다. 회의실 등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프로젝터 외에도 근접 투영할 수 있는 제품이나 간판용 제품 등 라인업을 확충할 계획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스크린스포츠 시장이다. 한국 엡슨은 스크린골프나 스크린야구 등 인도어 스포츠에서 수요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빠른 것 선호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한국인 특성에 맞아

한국 사람들이 스크린스포츠에 빠져드는 이유는 국민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반면 한국인들은 어울려 다니는 놀이문화를 선호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싼 필드를 대체할 수 있는 스크린골프장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대거 그쪽으로 몰린 이유다.

스크린스포츠는 빠른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에도 맞다. 일본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긴 줄을 서서 식당 앞에서 기다리지만 한국인들은 빨리 먹을 수 있는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가진 한국인에게 스크린스포츠는 안성맞춤의 놀이공간이다.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오랜 시간을 들여 운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멀리까지 이동해야 하는 실외 스포츠 대신 아무런 준비 없이 가까운 실내에서 언제든 즐길 수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은석 대구한의대학교 교수는 지난 2009년 한국여가레크레이션학회지에 ‘스크린골프 참여자의 운동동기 탐색, 참여요인, 재미요인, 실제감 요인’이라는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조사자 376명 가운데 45.9%가 시간, 거리, 비용을 스크린골프 동기로 선택했고, 스크린골프에서는 심리적 활력을 느낀다는 응답이 41.5%로 가장 많았다.

스크린스포츠는 가상현실(VR)에 이어 증강현실(AR)과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동원, 현실감을 높여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요소가 강했던 스크린스포츠가 정보통신기술(ICT)의 힘을 빌려 점점 실제 스포츠에 근접하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골프 시장을 처음 열었던 골프존은 프로골퍼 30명을 대상으로 자체 신뢰도 테스트를 진행, 실제 필드 상황의 95.5%까지 재현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고속카메라 센서로 클럽패스와 페이스, 임팩트 존, 볼 스핀, 볼 스피드, 발사각 등을 정교하게 측정해 구질과 방향 및 비거리 등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사와 페어웨이, 러프, 벙커 등 실제 환경과 유사한 스윙 플레이트를 제공해 볼의 위치에 따른 환경도 유사하게 구현해 냈다. 비거리와 구질의 정확성은 프로골퍼들이 실내와 야외에서 진행한 테스트를 통해 검증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현실감을 더 높이기 위해 카메라 워크를 연출하거나 볼을 치면 생기는 디봇까지 재현했다. 필드에서 즐기는 리얼 골프와 거의 유사한 싱크로율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효과는 리얼 스포츠에 못 미치지만 보조제 역할

물론 운동효과 면에서는 리얼 스포츠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잔디를 밟고 걷는 활동으로 얻는 운동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은퇴자 김수착 씨(60)는 “현역시절에는 필드에 자주 나갔는데 퇴직 후에는 돈이 부담되어 스크린 골프를 즐기게 됐다”며 “스크린골프는 재미와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기술과 그래픽으로 현장을 재현한다고 해도 잔디 결이나 상태 등에 따른 세밀한 차이로 인한 범타 발생이나 퍼팅 등은 실제와 다르게 느껴진다”며 “이런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대체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4년 문병일 전남대학교 교수가 종홍용 조선대 교수 및 박익열 경남과학기술대 교수와 공동으로 한국골프학회지에 발표한 ‘골프 라운드의 형태에 따른 환경적·생리학적 요인 차이 분석을 통한 스크린골프장 라운드 운동효과’ 논문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진은 스크린골프장에서 하는 라운딩의 운동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16명을 대상으로 스크린골프장과 실제 골프장 라운딩에 따른 환경·생리적 요인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크린골프에서는 이동거리가 0.49±0.09㎞로 5.81±0.43㎞인 필드와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적 변화도 미미했다. 스크린골프장에서의 평균 심박수는 92.66±3.69bpm으로 필드의 111.00±3.52bpm보다 19bpm 낮았다. 에너지소비량도 457.33±89.77㎉로 필드 1923.86±298.15㎉에 비해 4배나 적었다.

연구진은 스크린골프는 시간·경제적 여건에 따라 접근하기 쉽고 흥미와 여가 및 친목화동으로는 적합하지만 실제 골프장 라운드보다는 생리적 측면인 운동으로서의 효과는 낮다고 결론 내렸다.

스크린스포츠는 앞으로 다양한 종목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G사는 스크린당구도 차기 서비스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낚시에서는 낚은 물고기 크기와 포인트에 따라 선물을 제공하는 등 고객 유인 아이디어를 내고 있으며, 양궁이나 컬링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포츠를 스크린으로 구현한 종목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크린스포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철 한국시뮬레이션스포츠문화협회 사무국장은 “스크린스포츠 종목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필드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의 재미를 줘야 하고 전체 콘텐츠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스크린스포츠는 대체제가 아닌 보조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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